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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칼럼] 고무나무와 전구, 계란, 그리고 원자이
2024-01-03

프렌즈가 진행하는 아동결연사업 현장을 모니터링 하기 위해 라오스 사업장을 방문했습니다. 라오스의 아동결연사업은 프언밋학교와 함께하는 장학사업 형태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사업장이 위치한 우돔싸이는 라오스 북부 산악지대로 소수민족이 많이 살고 있어서 결연 아동 중에도 깊은 산 속에서 생활하는 소수민족 출신의 아동들이 많습니다. 아이들의 가정을 일일이 방문하고 싶지만, 워낙 깊은 산 속에 있고, 왕복 이동 거리가 몇 시간씩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학교를 중심으로 비교적 인근에 거주하고 있는 아동들의 가정을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호와 다음 호에 걸쳐 그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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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이가 살고 있는 집


결연 아동 중 한 명인 원자이(가명)의 집을 찾아 나섰습니다. 2021년 9월 프언밋에 입학한 원자이는 13살의 남자아이로 엄마와 4남매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아빠는 마약을 운반하다 발각되어 감옥에 가게 되었고, 언제 세상으로 다시 나오게 될지 기약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거금을 내면 출옥을 앞당길 수도 있지만, 원자이 가정과 같은 형편의 사람들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거액이 필요합니다. 원화로 몇천만 원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저기 움푹 패어 자칫 발을 헛디디면 낭패를 볼 것 같은 길을 걸어, 집이라고는 있을 것 같지 않은 산길을 오르다 보니 비로소 아이가 사는 오두막 같은 집이 나왔습니다. 원자이 엄마와 누나와 인사를 나누고 집안을 따라 들어가니 한낮인데도 밤과 같은 캄캄한 집안이 눈에 들어옵니다. 나무로 불을 피워 음식을 만드는 작은 공간과 얼마 안 되는 가재도구들이 보이고, 평상처럼 놓인 좁은 공간이 5명 가족이 함께 사는 집의 전부였습니다.  

감옥에 간 남편을 대신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엄마는 산속에서 천연고무 채취를 하며 살아갑니다. 갈고리처럼 생긴 도구를 이용해 나무에 대각선 방향으로 홈을 내주면 그 길을 따라 하얀 액체가 나오고 공처럼 굳힌 상태로 모아 두면 중국인 사업가가 이를 거둬들여 값을 지불한다고 합니다. 고무를 채취하기 위해서는 새벽 3시에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엄마와 누나는 항상 새벽잠을 설치고 이른 새벽에 고무를 채취합니다. 힘들게 모아 둔 고무를 도둑이 와서 몽땅 가져가 버리는 바람에 낭패를 본 적도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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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를 위한 고무나무와 희망의 선물 ‘전구’


원자이가 입학하여 후원을 통해 장학생이 된 후로 아이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물었습니다. 이곳의 관례상 원자이 엄마처럼 어떤 이유에서건 남편이 없는 상황이 되면 가족이나 종족으로부터 버림받고 스스로 생존해야 합니다. 산속에서 고무나무를 채취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가정에서 어린 원자이가 학교에 입학하고 공부를 할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고 했습니다. 엄마처럼 종족어밖에 할 줄 몰라서 공부도 힘들고 다른 친구들과 쉽게 사귀지도 못해 힘들었던 원자이는 그사이 라오어를 익혀 학교에 적응하고, 친구도 잘 사귈 수 있게 되었고, 자신감이 없던 여리고 약한 모습에서 활기차고 담대한 아이로 성장했다고 합니다. 엄마는 원자이가 가족의 유일한 소망이라고 했습니다. 어린 아들이 모든 가족의 희망을 작은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것이 혹 짐이 되고 버거울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원자이에 대해 말하는 엄마의 표정은 상기되고 자긍심으로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이자 유일한 선물이 ‘전구를 달아주는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아들이 어두운 불빛에서나마 공부를 이어갈 수 있게 작은 전구를 달아주었다며 수줍은 얼굴로 전구를 가리켰습니다. 


가정을 방문하면서 무얼 선물하면 좋을까 상의를 했었는데 종종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가족을 위해 쌀과 계란을 준비했습니다. 계란이 무슨 선물이 될까 싶었는데 이곳의 가난한 가정이 구입하기엔 계란이 너무 비싸서 쉽게 먹을 수 없기 때문에 무엇보다 좋은 선물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원자이 대신 엄마와 누나에게 쌀과 계란을 전달하고 그들의 환한 미소를 뒤로 한 채 산길을 걸어 내려왔습니다.


-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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